배당 수익을 꾸준히 쌓아온 지 몇 년이 지났다. 올해 초, 세후 기준으로 드디어 월 현금흐름이 450만원을 넘어섰다. 처음 ‘월 500만원이면 FIRE할 수 있겠다’고 마음먹었을 때를 생각하면, 이제 거의 다 왔다는 느낌이 들어야 맞다.
그런데 이상했다. 숫자는 가까워졌는데 결단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. ‘지금 당장 그만둬도 되겠다’는 확신이 생기지 않았다.
오래 생각한 끝에, 문제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찾아냈다. 파이어족 소비 파악 — 내가 한 달에 실제로 얼마를 쓰는지 — 이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. 목표를 정할 때 썼던 ‘대략 월 400~500만원’ 이라는 숫자가 진짜인지 확인하지 않은 채로 몇 년을 달려왔던 것이다.
💡 Plan B Insight: 이 글의 핵심
FIRE를 준비할 때 흔히 자산 규모나 현금흐름 목표에 집중한다. 하지만 그 전에 풀어야 할 질문이 있다. 내 월 소비가 정확히 얼마인가. 이걸 모르면 목표를 달성해도 확신이 생기지 않는다. 이 시리즈는 소비를 정확히 파악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들을 기록한 글이다.
1. 파이어족 소비 파악이 FIRE 준비의 첫 단추인 이유
대부분 FIRE를 ‘자산 X억 모으기’로 설정한다. 10억이면 되는지, 20억은 돼야 하는지. 그런데 자산 목표는 사실 역산이다. 먼저 내가 한 달에 얼마가 필요한지 알아야, 그걸 만들어낼 자산 규모나 수익률 목표를 거꾸로 계산할 수 있다.
순서를 정리하면 이렇다.
내 월 소비 파악 → 필요한 월 현금흐름 산출 → 목표 자산 역산 → 투자 전략 수립
이 순서에서 가장 처음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가 소비 파악인데, 많은 사람이 이 단계를 대충 넘어간다. 나도 그랬다.
2. 처음에는 엑셀로 대충 추정했다
FIRE를 처음 진지하게 생각했을 때, 나는 엑셀을 열었다. 고정비 항목을 죽 나열했다. 대출 이자, 통신비, 보험료, 아파트 관리비… 그리고 생활비 항목에 ‘대략 200만원?’을 입력했다. 합산하니 430만원 언저리가 나왔다. “그래, 월 500만원이면 여유 있겠다.” 그렇게 목표가 정해졌다.
문제는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드러났다.
📌 엑셀 추정이 빗나가는 이유
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빠지는 항목들이 있다. 분기마다 내는 보험료, 1년에 한 번 나오는 자동차세, 경조사비, 갑자기 생기는 의료비. 이런 것들은 카드 명세서 어디에도 매달 선명하게 찍히지 않기 때문에, 추정할 때 없는 돈처럼 계산된다.
목표에 근접했을 때 이상한 일이 생겼다. 숫자는 됐는데 결단이 안 서는 것이다. ‘이 숫자가 진짜 맞나?’라는 의심이 사라지지 않았다. 정확하지 않은 데이터로 세운 목표는 달성해도 불안함이 남는다는 걸 그때 알았다.
3. 소비 데이터가 사방에 흩어져 있다
“그러면 제대로 집계해보면 되지 않냐”고 할 수 있다. 실제로 해보려 하면 막히는 지점이 있다. 데이터가 너무 분산되어 있다.
은행 앱이 몇 개, 카드사 앱이 몇 개, 증권사 앱까지 따로따로다. MyData라는 서비스가 생겼지만 각 기관에 직접 들어가야 하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. 과거 데이터는 인터넷에서 최근 1년치만 조회할 수 있었다. 그 이전 이력을 확보하려면 카드사에 전화해서 별도 요청 절차를 밟아야 했다.
결국 소비를 ‘알 것 같지만 정확히는 모르는’ 상태가 계속된다. 이 상태에서는 FIRE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.
4. 월 카드값이 착시를 만든다
소비 데이터를 다 모았다고 해도, 단순히 ‘이번 달 카드값’을 내 월 소비로 보는 건 함정이다.
올해 5월이 딱 그런 달이었다.
| 월 | 소비 금액 | 비고 |
|---|---|---|
| 1월 | 448.7만원 | |
| 2월 | 574.5만원 | 설 명절 포함 |
| 3월 | 473.9만원 | |
| 4월 | 441.5만원 | |
| 5월 | 897.9만원 | 종합소득세 추가납부·미국주식 양도소득세 집중 |
| 월 필요금액 (세금 월 환산) | 519만원 | 세금 12개월 분산 반영 |
5월에 897만원을 쓴 건 사실이다. 그런데 이 달엔 종합소득세 추가납부분과 미국주식 양도소득세가 납부됐다. 이 세금들은 연간 고정 지출이지만 5월에 한꺼번에 집중된다. 이걸 포함한 채로 ‘내 월 소비는 897만원’이라고 결론 내리면 숫자가 완전히 왜곡된다.

실질적인 월 소비 기준을 잡으려면 3종류의 지출을 구분해야 한다. 고정비(매달 동일), 변동비(들쑥날쑥), 비정기 지출(특정 달에 몰리는 것). 세금처럼 연간 고정이지만 5월에 집중되는 지출은, 나간 달만 보면 이상치처럼 보이지만 12개월로 나눠보면 월 고정비의 일부다.
INSIGHT 897만원이 아니라 519만원이다
5월 소비 897만원과 월 필요금액 519만원은 같은 사람의, 같은 달 데이터다.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FIRE 가능 여부 판단이 완전히 달라진다. 비정기 지출을 어떻게 처리할지 방법론을 먼저 정해야, 내 진짜 FIRE 기준선이 나온다.
5. FIRE 이후 소비는 지금과 다를 것이다
소비를 파악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. FIRE 이후의 소비를 예측하려면 현재 소비의 항목 구조를 알아야 한다.
직장을 그만두면 교통비와 점심값은 줄어든다. 반면 여가와 여행, 건강 관련 지출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. 이 변화를 예측하려면 현재 교통비에서 ‘출퇴근 비용’이 얼마인지, 외식비에서 ‘업무 점심’이 얼마인지 세부 구조를 알아야 한다.
| 항목 | 지금 | FIRE 후 예상 |
|---|---|---|
| 교통·주유 | 출퇴근 포함 | 감소 예상 |
| 외식·점심 | 업무 점심 포함 | 감소 예상 |
| 여가·여행 | 주말 위주 | 증가 예상 |
| 건강·의료 | 최소 | 증가 예상 |
| 자녀 교육비 | 현 수준 | 증가 예상 |
데이터 없이는 이것도 다시 감으로 가게 된다.
⚠️ 본 포스팅은 개인의 재무 관리 경험을 공유한 글이며, 특정 투자나 재무 결정을 권유하지 않습니다. 본인의 상황에 맞는 판단은 직접 하시거나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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